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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오사카=뉴시스] 박미선 기자 = 지난해 12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올 초 정권 교체가 가시화되자, 일본 정가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며 겨우 해빙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집권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25일부터 나흘간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2025 한일언론포럼’ 에서도 드러났다. 필자가 만난 일본 언론인들과 정치인들도 같은 속내를 털어놨다. 이들은 올 상반기만 해도 “솔직히 ‘이제 어떡하지’싶었고 불안했다”고 회고했다. 한 참석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선거용 발언일 뿐 당선되면 과거 강경 노선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한일 관계가 긍정적으로 바뀐 덕분이다. 이 대통령의 대일 전략이 취임 이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본을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이 아닌 일본을 택한 것은 전례 없는 행보였다. 한일 관계를 견고히 다지려는 실용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부산으로 초청해 30일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에서 물러나는 이웃 나라 정상에 대한 예우이자 일본을 중요한 외교적 파트너로 본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만 이번엔 일본의 ‘총리 교체’가 큰 변수다. 이시바 총리 사임으로 10월 4일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결정된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그간 꾸준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다. 이에 한국 기자들은 현장에서 일본 언론인과 정치인들에게 “차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면, 갈등이 다시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그러나 일본 측 참석자들은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한일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한일 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북·중·러를 둘러싼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공조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도쿄에서 만난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자민당 중의원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서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나가시마 의원은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파견돼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 왜 문제냐는 인식이 (일본의) 젊은 세대에 많이 퍼져있다”며 “국가 지도자가 이런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하리 스스무 와세다대 일미연구소 초빙연구원도 “이는 전쟁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닌 지지층을 고려한 행보일 뿐”이라며 “만약 고이즈미가 총리직에 오른 후 신사 참배를 한다면, 한국 언론이 이러한 전후 사정과 입장을 잘 설명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 언론이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기는 국내 정서상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의 입장을 무시하고 우리의 논리만 앞세우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논리 대 논리의 충돌이며, 한쪽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한다면 갈등은 쉽게 격화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일본이 자기 논리를 펼칠 때 한국을 얼마나 의식하느냐, 그리고 상대국에 설명하려는 태도가 동반되느냐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극우 성향이 있는 보수정당 일본유신회 소속 마에하라 세이지 중의원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새 총리가 보수층을 겨냥해 한 번 정도 신사 참배를 할 수 있겠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여러 번 참배하는 건 막을 것이고, 만약 반복된다면 그건 총리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보다 더 큰 현안으로 헌법 개정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일본의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무력 불행사 원칙)를 명시하고 있다. 전후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문화하기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헌법 개정 모두 한국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일본유신회의 마에하라 의원이 한 발언은 한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이 깨질 경우, 양국 모두 손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올해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됐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요구하고 받아내는 대상’에서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 위상이 달라졌다. 긴밀한 협력이야말로 일본의 독단적 행보를 제어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도발로 읽히는 행보의 배경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변화의 징후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서로 간 단절이 아니라 더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전략적 협력 없이 일본을 제어할 수 없고, 역사에 대한 진지한 대화 없이 진정한 협력도 불가능하다는 역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only@newsis.com [도쿄 오사카=뉴시스] 박미선 기자 = 지난해 12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올 초 정권 교체가 가시화되자, 일본 정가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며 겨우 해빙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집권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25일부터 나흘간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2025 한일언론포럼’ 에서도 드러났다. 필자가 만난 일본 언론인들과 정치인들도 같은 속내를 털어놨다. 이들은 올 상반기만 해도 “솔직히 ‘이제 어떡하지’싶었고 불안했다”고 회고했다. 한 참석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선거용 발언일 뿐 당선되면 과거 강경 노선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한일 관계가 긍정적으로 바뀐 덕분이다. 이 대통령의 대일 전략이 취임 이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본을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이 아닌 일본을 택한 것은 전례 없는 행보였다. 한일 관계를 견고히 다지려는 실용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부산으로 초청해 30일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에서 물러나는 이웃 나라 정상에 대한 예우이자 일본을 중요한 외교적 파트너로 본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만 이번엔 일본의 ‘총리 교체’가 큰 변수다. 이시바 총리 사임으로 10월 4일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결정된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그간 꾸준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다. 이에 한국 기자들은 현장에서 일본 언론인과 정치인들에게 “차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면, 갈등이 다시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그러나 일본 측 참석자들은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한일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한일 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북·중·러를 둘러싼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공조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도쿄에서 만난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자민당 중의원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서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다만 나가시마 의원은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파견돼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 왜 문제냐는 인식이 (일본의) 젊은 세대에 많이 퍼져있다”며 “국가 지도자가 이런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하리 스스무 와세다대 일미연구소 초빙연구원도 “이는 전쟁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닌 지지층을 고려한 행보일 뿐”이라며 “만약 고이즈미가 총리직에 오른 후 신사 참배를 한다면, 한국 언론이 이러한 전후 사정과 입장을 잘 설명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한국 언론이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기는 국내 정서상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의 입장을 무시하고 우리의 논리만 앞세우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논리 대 논리의 충돌이며, 한쪽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한다면 갈등은 쉽게 격화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일본이 자기 논리를 펼칠 때 한국을 얼마나 의식하느냐, 그리고 상대국에 설명하려는 태도가 동반되느냐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극우 성향이 있는 보수정당 일본유신회 소속 마에하라 세이지 중의원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새 총리가 보수층을 겨냥해 한 번 정도 신사 참배를 할 수 있겠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여러 번 참배하는 건 막을 것이고, 만약 반복된다면 그건 총리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보다 더 큰 현안으로 헌법 개정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일본의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무력 불행사 원칙)를 명시하고 있다. 전후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문화하기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헌법 개정 모두 한국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일본유신회의 마에하라 의원이 한 발언은 한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이 깨질 경우, 양국 모두 손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올해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됐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요구하고 받아내는 대상’에서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 위상이 달라졌다. 긴밀한 협력이야말로 일본의 독단적 행보를 제어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도발로 읽히는 행보의 배경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변화의 징후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서로 간 단절이 아니라 더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전략적 협력 없이 일본을 제어할 수 없고, 역사에 대한 진지한 대화 없이 진정한 협력도 불가능하다는 역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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